“아이가 제 말을 무시해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대꾸를 안 해요.”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들의 하소연이다. 전문가들은 “사춘기를 잘 넘기려면 자녀와 대화를 자주 하라”고 조언하지만, 정작 엄마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더 답답하다. “애가 대답도 안 하는데 무슨 대화를 하란 말이냐”고 되묻는다. 심지어는 “대화를 시도하려고 할수록 더 어긋나기만 하더라”고 토로하는 부모도 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오랫동안 청소년 심리 상담을 해온 김영아 영남사이버대 교수와 최영인 인천 부개고 교사에게서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법’에 대해 들어봤다.
◇일방적 명령·훈계는 ‘대화’가 아니다
사춘기 문제를 겪는 가정 중에는 대체로 자녀가 어릴 때부터 관계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영·유아기에 안정적인 애착 형성이 되지 않으면, 아이의 마음은 늘 ‘불안(不安)’한 상태가 된다. 김 교수는 “부모가 아이 마음에 자리한 ‘불안’을 ‘안(安)’, 즉 ‘편안한 상태’로 바꿔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이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소통(대화)”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에 대한 인식 차가 있다는 점이다. ‘대화를 자주 한다’고 말하는 부모가 많은 반면, 자녀들은 ‘대화가 거의 없다’고 느낀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부모는 자기가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한 말을 ‘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 교사는 “부모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기 때문에 대화했다고 여기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잔소리’만 들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화란 서로 주고받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는 ‘공부해라’ ‘빨리 밥 먹고 학교 가라’ ‘방 청소해라’ ‘친구를 잘 사귀어라’ 등 명령이나 훈계를 늘어놓고는 대화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그 말에 수동적으로 따르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죠. 이런 건 대화가 아닙니다.”
또한 옳은 말이나 바른말이 아이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대화의 출발은 ‘경청’이다. 최 교사는 “아이 말을 충분히 듣고 나서 부모가 말해도 늦지 않다”며 “아이는 ‘부모가 내 말을 잘 들어준다’고 느끼면, 자연히 부모 말에도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말의 내용뿐 아니라 표정이나 행동도 중요하다. 요즘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 대부분은 ‘말을 심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속내가 행동이나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 교수에 따르면, 아이들은 ‘메타언어’가 성인보다 더 발달했다.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어투, 목소리 톤, 눈빛 등으로 숨은 의도를 찾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자기 생각이나 마음도 직접 말하기보다 표정이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예민한 아이일수록 이러한 메타언어가 잘 발달하기 때문에, 부모가 보여주는 ‘비언어적 메시지’에 크게 상처 받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혹은 퇴근하고 집에서 아이를 봤을 때 엄마가 아이 표정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 상태를 파악하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제가 상담해 보면, 엄마는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서 뭐든 다 했다’고 말해요. 그런데 아이를 불러 얘기해 보면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요? 진짜 웃기네요’라고 비아냥거려요. 저는 이런 것을 ‘사랑의 배달 사고’라고 표현합니다. 엄마는 정말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마음이 아이에게는 하나도 전해지지 않은 거예요. 말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뜻이죠.”
◇아이 존재 부정하는 말, 가장 큰 상처 준다
중·고교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 감정보다 ‘공부’나 ‘입시’를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아이와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대학부터 보내고 보자’거나 ‘어린 애 감정 따위가 뭐가 중요하느냐’며 무시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입시가 끝날 때까지) 2~3년만 참아라”고 강요한다. 김 교수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엄마(아빠)에게는 나보다 대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 같은 아이 가운데 부모에게 ‘복수심’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아요. 이런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목표점에 도달한 뒤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곤 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3개월 만에 ‘내가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라며 자퇴한 아이도 있었고, 서울대 합격증을 받은 날 자살한 학생도 있었지요. (성적만 중시하는 부모에게) ‘뭐가 더 중요한지 보여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존재를 부정하는 말, 무시하는 말 등을 들었을 때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두 사람에 따르면, “내가 너를 왜 낳아서…” “네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최 교사는 “부모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어차피 난 해도 안 돼’ ‘내가 그렇지 뭐’라며 자포자기하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평소 이런 말을 반복하다가 시험을 잘 봤을 때만 남 앞에서 칭찬하고 자랑하는 태도도 문제”라며 “그러면 아이는 칭찬받아 기뻐하는 게 아니라 ‘나는 공부 잘할 때만 엄마(아빠) 자식이구나’라며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고 충고했다.
◇ ‘수다스럽고 푼수 같은 엄마’ 돼 보라
자녀와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이유의 하나는 평소엔 거의 대화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이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채근하기 때문이다. 최 교사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정성 들여 관계의 탑을 쌓았어야 사춘기 때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법”이라며 “이런 과정은 몽땅 생략한 채 ‘아이가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책임을 미루는 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만약 지금까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은 채 아이가 십대를 맞이했다면, 부모가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훈계나 명령 대신 가벼운 일상을 소재로 아이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연예인 얘기도 좋고 같이 영화를 보면서 대화 나눠도 좋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는 것도 좋고요.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고자 노력한다면 아이들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 겁니다. 단 대화할 때 훈계나 충고, 명령은 자제하세요. 훈계가 시작되면 대화는 그 순간 끝납니다.”
김 교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여건상 많은 것을 해줄 수 없다고 느낀다면) 수다스럽고, 푼수 같은 엄마가 돼라”고 조언한다. 일상에서 아이와 대화할 거리를 찾아내고, 얘기하라는 뜻이다. 특히 엄마가 시도하기 좋은 방법은 ‘요리’다. “엄마가 이거 만들었는데, 네가 (요리 경연 프로그램) 심사위원처럼 품평 좀 해줄래?”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엄마가 오늘 모임이 있는데, 이 옷 어떠니?” 같은 질문도 좋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아마 아이가 ‘웃기지도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일 거예요. ‘엄마가 갑자기 왜 저래?’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아이가 그런 반응을 보이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세 번만 해보세요. 그러면 아이가 퉁명스럽게나마 입을 열기 시작할 겁니다. 엄마가 한 번 시도했다가 포기해 버리면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며 엄마를 믿지 않게 돼요. 이것저것을 시도했다가 금세 포기하기보다는 한 가지 변화를 꾸준히 보여주는 게 아이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
대화 시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길게 얘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이들은 참을성이 별로 없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효과는 없고 아이와 관계만 나빠져서 더 이상 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어렵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짧고 명확하게, 단호한 태도로 말한 뒤 아이에게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참지 못하고 했던 말을 반복하면 대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최 교사는 “아이를 기르는 것은 원래 길고 지난한 과정”이라며 “조급해 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림을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화할 때의 장소나 분위기도 중요하다. ‘너 여기 좀 앉아봐’ ‘안방으로 들어와’ 같은 말로 대화를 시작하면 안 된다. 장소나 분위기가 아이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배고프지 않니? 간식 좀 먹을까?’ 같은 부드러운 말로 대화를 시작하고, 주방이나 거실처럼 공개적이고 편안한 장소에서 대화하는 게 좋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감정을 교류하는 말도 중요하다. 예컨대 “네가 ~해서 엄마가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는 ‘아이(I·나) 메시지’형 대화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자녀와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느낀다면, 모든 것을 멈추고 아이와 둘만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여행지에서 아이와 ‘감정의 맞짱’을 한 번 뜨는 거예요. 둘이 싸우게 되더라도 자기감정을 털어놓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게 좋습니다.”
◇ 좋은 엄마 되고 싶다면, ‘자기 내면’부터 들여다봐야
최 교사는 “부모는 자녀의 위안처가 돼야 한다”며 “아이 마음을 받아주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데서 대화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많은 부모가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아이를 협박하고 다그쳐요. 하지만 이렇게 살기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부모까지 아이를 공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협박하고 겁주는 게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마지막까지 편안하고 따뜻한 쉼터가 돼 주는 것이에요.”
김 교수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시선을 아이·남편 말고 ‘나(자신)’에게 돌려 보라”고 권한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한계와 단점을 사람인지 등을 알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라는 뜻이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면, 남과도 잘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잘난 나도, 못난 나도, 다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못나고 부끄러운 나는 내가 아니다’라며 부정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쏟아내며, 아이를 몰아붙이게 되거든요. 저 역시 제 못난 부분을 인정하고, 그걸 아이와도 나눠요. ‘엄마가 ~한 면이 있잖아’ ‘엄마가 ~에 대해서는 젬병이잖아’라는 식으로요.”
MBTI검사 등을 통해 아이와 부모 성격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 김 교수는 “검사를 통해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 ‘아이와 내가 이렇게 많이 다른데, 내 마음대로 억지로 끌고 왔구나’라는 점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했다.